상담자가 인격적으로 성숙한 만큼 내담자를 도울 수 있는 말이 있다. 상담에 대한 상담자의 전문적인 지식보다 인간적인 자질이 상담 효과를 결정짓는다고 할 만큼 인간적 자질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상담자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내담자의 다양한 문제를 다룰 수가 없다. 특히 상담자가 자신의 것과 유사한 문제를 다루다 보면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 내담자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기가 어려워진다. 상담자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잘 파악하고 자신에게 내재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면 상담자의 인간적 자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생물학적·심리학적·영적인 존재로 어느 누구도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 인간, 즉 사람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상담자는 이러한 사람들, 곧 내담자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경험하고자 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상담자는 가능한 한 사심, 사욕, 편견 없이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한 내면세계를 이해하여야 한다. 혹시 내담자의 행동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내담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행동을 파악해야 내담자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은 공감이 이루어진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단지 어느 한 인간이 처한 현실적 문제를 파악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파악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문제를 파악하고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낄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담자가 보이는 감정, 생각, 행동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변한다. 그러나 내담자는 일부 문제점을 자신의 전부로 알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현실과 거리가 먼 부적절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상담자가 감정이나 생각, 부정적인 경험을 수용하고 존중할 때, 내담자는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2. 상담에 대한 열의
상담자는 상담활동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담이 즐겁고 보람 있는 삶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만나고 내담자의 경험에 공감하고 함께 협동하며 상담을 진행시킨다. 내담자가 서서히 변화하면서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상담자는 보람을 느낀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내내 내담자와 함께한다. 상담에 대한 순수 열정으로 상담에 임해야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담자를 돕는 것 외에 상담자의 개인적 욕구가 개입되면 상담의 훌륭한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3. 다양한 경험과 상담관 정립
상담자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상담자의 다양한 경험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서 내담자를 만나고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예를 들어, 상담자가 공부를 잘 하지 않고 부모님의 속을 태운 경험이 있는 학생이었다면 학교에서 공부는 안 하고 친구와 싸움이나 하는 내담자를 만날 때, 왜 그가 공부를 안 하는지, 그 심정이 어떤지를 잘 헤아려 공감하기 쉬울 것이다. 또 상담자가 남자라면 한국의 며느리들이 겪는 괴로움에 대하여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어서, 시부모와의 갈등에서 힘들어하는 며느리의 마음을 알아주기보다는 며느리의 의무와 역할에 대한 이야기에 상담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때로는 내담자도 부모님이 있는데 왜 남편의 부모님을 욕하느냐 등의 비판적인 생각이 들어 상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상담자는 군대에서 눈치 보느라 할 말 못해 힘들었던 군대 경험이라도 떠올려 내담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내담자가 편안하게 상담에 임할 수 있다. 상담자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내담자의 입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상담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오랜 임상적 경험과 상담 이론에 대한 공부는 상담자로 하여금 다른 상담자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상담관을 정립하도록 도움을 준다. 상담관은 그야말로 수많 내담자를 만나고, 그들과의 상담활동을 통해 얻은 지식과 성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상담자의 중요한 자산이다.
4. 상담자 자신을 인정하고 돌보기
상담자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유능한 상담자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제조건은 아니다. 즉, 상담자도 슬프면 울고, 화나면 인상을 찌푸리고, 기쁘면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상담자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거나, 희로애락에 초엲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상담자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내담자를 진정으로 돕게 만든다.
5. 상담자의 가치관
흔히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는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상담자가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을 노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내담자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담자의 말을 무조건 경청하고 수용해주는 소극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상담자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엄정하게 가치중립적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상담자는 자신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파악하고 그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현실 생활 속에서 어떤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지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처럼 다종교 사회에서는 잘못하면 종교적 문제로 심각한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자신의 종교적 입장과 가치를 강요하거나 은밀하게 주입해서도 안 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가치중립적인 입장이 유지되어야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담자는 필요한 경우 내담자의 가치관에 도전할 수 있으며, 특정 행동이 파괴적이라고 느낄 때는 행동의 결과나 대가를 검토해 보도록 직면시킬 수 있다(Corey, 2017).
대부분의 상담 장면에서는 상담자의 가치관이 노출된다. 말과 행동의 바탕에 이미 가치관이 깔려 있으며 그것을 무리하게 배제하려는 노력은 가능하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자칫 기적인 상담으로 변질되기 쉬우며 상담자와 내담자의 인격적인 만남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상담자는 필요할 때 자신의 가치관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영향을 내담자와 진솔하게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가치의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는 여러 가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전화상담의 한 사례를 들어 보겠다. 결혼한 지 7년 된 가정주부가 상담을 청해 왔다. 남편의 수입은 부족하지 않은데, 술만 마시면 폭행을 가한다는 것이다.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고 있는데도 폭행이 계속 되풀이되어 이제는 지쳐 이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가정폭력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상담자는 이혼하는 것이 좋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은근히 노출하게 되었고, 내담자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담자는 2개월이 못되어서 상담자를 원망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상담자의 조언을 듣고 이혼을 했는데 지금은 후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힘들어도 자식을 생각해서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배우자와는 단호하게 이혼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상담자에 따라서는 가치관의 차이가 많이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상담자의 가치관은 내담자의 판단과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노골적이 아니라 은근한 표현도 내담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밖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 가운데 가치판단에 혼란을 유발하는 문제들이 대단히 많다. 다양한 현대사회의 가치관을 상담자가 이해하고, 상담 장면에서 항상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언제나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상담자는 상담 진행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솔직하게 개방해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내담자에게 개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상담자 자신의 가치관을 내담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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